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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3.03.04 기차
  3. 2018.01.01 18, 불송구영신(不送舊迎新) 1
  4. 2017.01.09 반성 (反省) 1
  5. 2014.04.23 망각(忘却)
  6. 2014.03.13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7. 2014.02.25 [정호승] 수선화에게
  8. 2014.01.21 [유치환] 행복
  9. 2013.12.09 [00] 민.. 그의 작은 이야기
  10. 2013.12.09 [01] 無制 0 - 외침

꽃봄

☆ 헤는 밤../習作 2024. 3. 19. 09:28

꽃봄


꽃이 폈으면, 봄이다.

… ?

꽃이 펴서, 봄 온건지
봄이 와서, 꽃 핀건지

봄이 되어, 꽃 본건지
꽃을 보아, 봄 아는지

꽃 봄에 핀
봄 꽃음 봄

봄 꽃이 핀
꽃 봄을 봄

꽃은 때 되면 피어나고
봄은 때 되면 오는건데
보고 있는데도 모르겠다

꽃을 봤다고,
봄일까?


20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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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 헤는 밤../習作 2023. 3. 4. 07:36

기차

 

 

기차는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기차에 올라,

 뜻으로 나아가려 했다.

 

나는 기차가 되었다.

나도 기차였지만,

나는 기차가 아니었다.

 

기차의 일부였던 나는,

어느새 방관자가 되었다.

 

나는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세상은 흘러가고 있다

 

 

202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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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불송구영신(不送舊迎新)


새 해가 밝았다 합니다.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보긴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 해가 끝나지 않은 기분이라
나는 인정하기 어려웁지만, 모두가 그렇다 합니다.

내가 아니라 해서
나는 당신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단 송구(送舊)하지 못한 나 외엔
영신(迎新)한 모두가 새해 복 많이 받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도 송구(送舊)하여 새해를 인정할 무렵,
지금 받으신 복, 한 귀퉁이 나눠 주었으면 합니다.

언젠가 당신께서
오늘의 나처럼 새해를 인정하기 어려운 날이 오면,
그때엔 내가 당신께 내 복 한 귀퉁이 베어
미소와 함께 선사하겠습니다.

그러니 아직 이런 날 기다려주길 바랍니다.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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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反省)



끔찍한 밤, 416을 잇겠노라 다짐하며
소심히 망각(忘却)을 역설했다.

구차한 밤에 남겨둔 울분은
아이들의 시신(屍身)처럼 식어갔고,
끝내 아이들의 시선(視線)을 놓치고 말았다.

밤과 낮이 천 번은 바뀌었다.

아이였던 나는 아비가 되었고,
내 아이의 시선(視線)에서
잊었던 한 언론의 양심을 들었다.

뒷 일을 부탁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차한 밤의 기억
뒤늦은 노란 약속
내일로 이을 세월

침몰하지 않을 진실이 바로 설 때까지
잊지않고, 잇겠다.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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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忘却)



지친다,
아니 지쳤다.

삶, 어느 귀퉁이
돌고 돌아도 늘 내 자리,
구석에 흘려버린 꿈엔
위안이 없다..

꿈 버린 삶
포기도 못한 채
불평, 불만, 불신,
그중에 제일인 불안으로.
영생의 집을 짓는다..

세월이 거꾸로 가고,
세파람에 흩날리는
성수가, 낙루해도..

그네를 기억해야기에
구차한 밤, 하루를 잇는다.


201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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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1946~) 詩人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은 2003년 발표된 詩集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에 수록된 詩다. 사실 詩人의 作品을 소개하기 까지 많이 망설였다. 평소 詩人의 글을 즐겨 읽은 것도 아니고, 남들과 같이 언론이나 sns를 통해 詩人의 사회적 활동을 그저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인 것이 고작이었기에, 詩人의 文學觀이나 작품에 내재된 哲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詩人의 作品도 이 詩를 접한 것이 전부였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앞서 여러 詩人들의 詩를 소개할 때도 그분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기에, 뻔뻔한 얼굴을 곧게 들고서 그저 '가끔씩 그대 흔드릴 때는'에 대한 내 감상만을 적어볼까 한다.

삶이란 무수한 선택의 집합*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맞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느 하나의 길을 골라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아가는 행위인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갇혀 존재하는 우리에게 한 번 택하여 지나온 길을 되돌아갈 방법은 없기에, 언제나 선택의 순간에서는 망설이게 된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단 하나를 선택함에 따르는 기회비용을 계산하게 되고, 선택에 따른 수 많은 관계의 변화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의 갈등을 만들어 낸다. 이외수 詩人은 가끔 흔들릴 것이라 말했지만, 사실 우리는 항시 흔들거리며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다.

萬人萬思라고, 비슷한 선택의 순간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각각의 선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는 모두가 같다.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한다. 그래서 난 2006년 여름에 겪었던 어떤 선택의 순간에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는 詩人의 말을 떠올렸다. 詩人과 같은 나무를 보았다 하더라도, 詩人과 같은 생각을 하진 않겠지만, 시인도 나도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해야했기에 같은 방법을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난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서부터 서서히 독립된 생활을 시작했기에, 많은 부분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했다. 나를 믿고 홀로서기를 도와주시는 부모님께 언제까지나 의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선택의 무게를 이기기 위해 윤동주 詩人과 이영도 作家를 멘토***로 맞이했다. 내가 추구하는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윤동주 詩人의 '序詩'에서 얻었고, 선택의 과정에서 생기는 혼란은 이영도 作家가 '드래곤 라자'에서 핸드레이크의 입을 빌어 했던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 빛을 준다"는 말을 길라잡이로 삼아 극복했다. 이 두 분의 목소리 덕분에 수 많은 선택의 순간을 잘 겪어낼 수 있었고, 후회없이 나만의 '바른 길'을 찾아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다.

완벽한 멘토를 찾았다고 믿게된 순간, 혼란이 찾아왔다. 고민끝에 선택하여 믿고 달려가던 나의 '바른 길' 자체에 대한 의심과 고민이 생겨났다. 내 선택에 후회가 찾아왔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시간만 죽이이게 된 2006년의 어느 여름날,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을 만났다. 신념과 용기만으로 극복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을, 이 詩를 통해 내가 왜 나의 '바른 길'에서 주저하게 됐는지, 무엇을 잊고 있었기에 흔들리게 되었는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이외수 詩人의 목소리는, 나의 흔들림을 치유해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흔들림의 끝에는 대지에 굳게 박힌 뿌리가 있었음을 알려주었고, 방황을 이겨낼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로 내 선택에 있어 후회라는 말이 떠오를라 치면, 이 詩를 생각하며 나무를 바라본다. 어떤 나무라도 상관은 없다. 수백년을 살아온 거목도, 이제 갓 묘목 티를 벗은 나무라도. 같은 대상을 본다해도, 매 순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텐데, 나무야 아무렴 어떤가. 그저 나무에 달려 바람에 우쭐대는 수 많은 나무 가지도,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되었음을. 그 뿌리가 대지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기에 바람에 흩날리지 않고 그저 흔들거리기만 할 뿐임을 상기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나서 다시 걸어가면 된다. 자신이 그리는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하지만 묵묵히.




* : 이런 말 보면 꼭 삶은 계란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삶은 界亂 맞다. 선택은 한 국면에서,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기 위한 경계에서 필요한 것이고, 그런 경계에 서면 항상 혼란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삶은 달걀은 안되지만, 界亂은 맞다.

** :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아니함도, 그런 행위를 선택한 것이다.

*** : 물론, 두 분은 본인이 나의 멘토임을 모르신다. 아무렴 어떤가. 대신 나는 그 분들께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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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詩人(1950~)은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일상의 쉬운 언어로 현실의 이야기를 詩로 쓰고자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아마도 우리 문단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쉬운 詩를 주장하신 분인 것 같다. 1976년에는 생각을 같이 하는 젊은 동료 詩人들과 '반시(反詩)'라는 동인을 결성해 60년대 선배 詩人들의 난해하고 추상적인 詩들과는 다른 문학적 흐름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일거다. 정호승 詩人의 詩는 따뜻하다. 하고 싶은 말을 편안한 호흡으로, 나직히 읊조리는 느낌이다. 덕분에 詩人의 목소리는 참 듣기 좋다.

'수선화에게'는 1998년 발표된 詩集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 수록된 時로, 이듬해 '나팔꽃'이라는 시노래 모임(김용택, 안도현, 도종환 등과 함께 활동)에서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종종 제목을 혼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또한 그 중 한 사람이고. ^^;

십 수년 째 홀로 객지생활을 하면서 외롭고 지칠 때면 가끔 '수선화에게'를 읽는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홀로 앉아 이 詩를 소리내어 읊어본다. 詩人께선 마치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내는 듯한 말투로 노래하셨지만, 읊으면 읊을수록 이 詩는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나에게 실컷 울지말라고, 외로움을 견디라고, 모든 존재는 외로운게 당연한거라도 스스로 말해주고나면, 詩人께서 하셨을 지도 모를 행동이 떠올라 피식 웃으며 울쩍한 기분을 조금은 풀어내곤 했다.

정말 詩人께선 그러셨을까? 왈칵 쏟아지려는 뜻모를 눈물을 삼키며... '난 울지 않을거야. 외로운게 사람아니겠어? 난 이 외로움을 견뎌내겠어.' 두 주먹 불끈 쥐며 자신을 다독인다. 그리곤 주위에 보이는 모든 존재를 외로움의 동지로 바꿔놓는다. 가슴검은 도요새도, 하느님도, 새들도, 산 그림자도,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 마저도. 사실은 애타게 전화를 기다리며 홀로 물가에 앉아있는데 말이다. 그러다 멋쩍어졌는지, 곁에 피어있던 수선화에게 툭 던진다. 울지말라고.

진실이야 무엇이든. 외로움을 느낄 때 몇 번이고 '수선화에게'를 소리내어 읊어보라. 언제고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어차피 당신도 혼자 있을테니 남 신경 쓸 필요 없다. 자신과 '수선화에게'에만 집중하라.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어떤 목소리로든.. 드라마 '미스코리아'의 정선생 처럼 툭툭 던지듯 자신에게 들려줘도 좋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상냥하게 위로하듯 노래해도 좋다. 몇 차례 스스로에게 '수선화에게'를 들려주고나면, 당신도 나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정말 좋은 詩가 가진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외로움이 조금 달래지는 것은 덤이니 사양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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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갑오년(甲午年)의 첫 詩로 靑馬 유치환 詩人(1908~1967)의 ‘행복’을 선정했다. 이유는 눈치채신 것과 같이 詩人의 호(號) 때문이다. 사실 ‘행복’의 배경인 통영서 돌팔이질 하는 친우 최의원 말에 따르면, 60갑자를 이용해 매 해를 부르는 이름은 명리학에서 천명한 것과 같이 입춘(立春)을 기준으로 바뀌기 때문에 금년도 입춘인 2월 4일이 오기 전에는 올해를 靑馬之年이라 부를 수 없다. 하지만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대다보니 자연스레 靑馬 유치환 詩人을 연상하게 되었다. 푸른 말. 호(號)처럼 진취적(?)이고 활발한 사랑을 했던 詩人.


학창시절에는 詩人이 어떤 마음으로 ‘행복’을 노래했는지도 모른채, 그저 詩人이 청록파네 어쩌네 하는 수험용 배경만 머리에 담고서 ‘행복’이 전해주는 노랫말의 아름다움에만 취해 있었다. 마치 짝사랑이라는 열병을 앓던 소년처럼. 사랑받지 못해도 그저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그/그녀에게 보낼 사소한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끄적일 때 갖는 마음. 그 마음을 이해한다 믿었기에 난 그저 ‘행복’을 읽고, 베끼고, 공감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세월을 시간과 함께 흘러온 지금, 조금은 세상살이의 고단함도 맛보고, 연인 사이를 지나는 감정의 흐름도 느낄 수 있게된 지금의 내가 다시 읊어본 ‘행복’은 솔직히 마음 한 켠에 부끄러움을 담게 만든다. 나 또한 그저 길거리에 흔한 사회적 도덕의 노예이기 때문일까?


별스럽게 소개했지만, 이 詩는 詩人이 사랑하는 이에게 보낼 연서를 쓴 뒤, 그것을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들리는 자신의 들 뜬 마음을 묘사한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는 그저 詩를 읽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詩라는 것이 늘 그렇듯 ‘행복’ 또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행복’이라는 詩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는, 詩人이 작품을 쓰던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는게 도움이 되곤 한다. 사실 내게 남의 연애사를 뒤적거리며 사족을 덧붙일 만큼 한가로운 취미는 없지만, 詩的 탐구심으로 잠시 청마의 사랑을 돌이켜볼까 한다. 


詩人은 거리에 흔한 나같은 사회적 도덕의 노예들과 달리, 결혼 후 다른 여자와 연애를 했다. 그렇다. 이혼이 아닌 결혼 '후'다. 그것이 바람이었는지, TV속 연예인을 향한 동경의 눈길과 같은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詩人은 부인이 곁에 있음에도, 부인이 아닌 여성을 향한 사랑을 노래했고, 그 과정이 담긴 詩가 바로 ‘행복’이다. 


詩人은 1947년, 불혹을 한 해 앞둔 나이에 본인이 근무하던 학교로 부임한 29세의 미망인이자 시조시인 이영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처자가 엄연히 살아있는 유부남이, 근무지에 부임한 미망인 선생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연애가 흔하고 넘치는 오늘날에도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소재로 부족함 없는 소재인데, 70여년 전에는 오죽했으랴. 그것도 훗날 교장까지 지낸 교육자의 신분으로. 하지만 시인은 당당히 - 그 자신감의 근원은 모르겠지만 - 시조시인 이영도를 사랑했던 것 같다. 그 증거로, 3여년 간의 구애 끝에 연인으로 발전한 새로운 연인에게  詩人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약 20여 년 동안 5,000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20년. 그리고 5,000통. 

사흘에 두 편은 족히 써야하는 분량이다. 

잠시, 그 열정에 묵념.


5,000여 편의 연서가 모두 행복과 같이 우수한 작품성을 가졌는지, 혹은 그에 필적할만한 장편의 글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詩人께서 작고한 뒤에 그 중 200여 편을 추리고, 오늘 소개한 '행복'의 한 구절을 따 이름지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유고시집이 나온 것을 보면, 적어도 그 중 200여 편은 우수한 작품이었으며 월간 윤종신 처럼, 창작의 고통이 수반될 만한 작품을 적어도 한 달에 한 편 씩은 지으셨다는 단순 무식한 계산이 가능하다. 靑馬 유치환 선생이 아니라, 多作 유치환 선생으로 불러야 하는 것일까.


불륜. 하지만 당당한.


많은 세월이 흐른 뒤의 타인이 보기에도 어울리기 힘든 단어라 생각되지만, 남겨진 흔적만으로 유추하였을 때 사랑의 당사자인 두 사람만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아름답고 풋풋한 고백이 어디 있을까. 이문당에서 연인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정성스레 담은 연서를 고이 접어, 맞은편 통영 우체국에서 부치는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묘사한 시. 불혹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이토록 소년과 같이 순수한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이가 또 있을까. 한 여이을 사랑하는 남자로서 반성이 필요한 대목같다. ^^;


유치환과 이영도. 그 두 분의 마음을 지금와 내가 알 길은 없지만, 열열한 사랑이었음은 '행복'이라는 詩 한 편 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분들 외에도 사의 찬미*라는 노래와 불륜, 동반자살로 유명세를 탔던 윤심덕과 김우진의 경우도 그렇고,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 분들 중에는 간혹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많은 연인을 찾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사랑을 노래하고 표현하던 이들에겐 남들보다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가슴에서 넘치는 사랑을 글로, 예술로 표현해버리고 나면 공허함이 찾아와.. 그 공백을 메워줄 또 다른 사랑을 찾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 요즘 젊은 이들은 불후의 명곡에서 바다가 부른 '사의 찬미'를 들은 것이 첫 경험일 것이다. 난 사실 이전에 이 노래를 들은 적이 있었고, 막연하게나마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바다가 불후의 명곡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공중파에서 불륜을 담은 노래를 버젓이 불러도 되는걸까 하고 말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나는 사회적 도덕의 노예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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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그의 작은 이야기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01. 무제 0 - 외침

02. 무제 1 - 도피

03. 무제 2 - 항변

04. 무제 3 - 그날 밤 이야기

05. 무제 4 - 잃어버린 낙원


06 너에게 1.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06 너에게 2. 부활

06 너에게 3. 아쉬움

06 너에게 4. 늘 같은 모습으로

06 너에게 5. J에게


07. 父

08. 그때를 아십니까

09. 옛 일을 떠올리노라면

10. 비

11. 별 - 동주형님께

12. 어제의 꿈을 위해

13. 독백 (낮은 목소리로)



<2005.11.12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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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制 0 - 외침




어제는

그리움에 불러보았습니다


너무나도 메마른

눈물젖은 비정함에

가슴깊이 들려오던

처절했던 메아리


오늘은

그 무엇이 불러봅니까

그 무엇이 불리웁니까


잊혀진 그날의 추억이


어제는 그리움에 불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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