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1946~) 詩人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은 2003년 발표된 詩集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에 수록된 詩다. 사실 詩人의 作品을 소개하기 까지 많이 망설였다. 평소 詩人의 글을 즐겨 읽은 것도 아니고, 남들과 같이 언론이나 sns를 통해 詩人의 사회적 활동을 그저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인 것이 고작이었기에, 詩人의 文學觀이나 작품에 내재된 哲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詩人의 作品도 이 詩를 접한 것이 전부였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앞서 여러 詩人들의 詩를 소개할 때도 그분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기에, 뻔뻔한 얼굴을 곧게 들고서 그저 '가끔씩 그대 흔드릴 때는'에 대한 내 감상만을 적어볼까 한다.

삶이란 무수한 선택의 집합*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맞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느 하나의 길을 골라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아가는 행위인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갇혀 존재하는 우리에게 한 번 택하여 지나온 길을 되돌아갈 방법은 없기에, 언제나 선택의 순간에서는 망설이게 된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단 하나를 선택함에 따르는 기회비용을 계산하게 되고, 선택에 따른 수 많은 관계의 변화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의 갈등을 만들어 낸다. 이외수 詩人은 가끔 흔들릴 것이라 말했지만, 사실 우리는 항시 흔들거리며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다.

萬人萬思라고, 비슷한 선택의 순간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각각의 선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는 모두가 같다.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한다. 그래서 난 2006년 여름에 겪었던 어떤 선택의 순간에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는 詩人의 말을 떠올렸다. 詩人과 같은 나무를 보았다 하더라도, 詩人과 같은 생각을 하진 않겠지만, 시인도 나도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해야했기에 같은 방법을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난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서부터 서서히 독립된 생활을 시작했기에, 많은 부분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했다. 나를 믿고 홀로서기를 도와주시는 부모님께 언제까지나 의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선택의 무게를 이기기 위해 윤동주 詩人과 이영도 作家를 멘토***로 맞이했다. 내가 추구하는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윤동주 詩人의 '序詩'에서 얻었고, 선택의 과정에서 생기는 혼란은 이영도 作家가 '드래곤 라자'에서 핸드레이크의 입을 빌어 했던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 빛을 준다"는 말을 길라잡이로 삼아 극복했다. 이 두 분의 목소리 덕분에 수 많은 선택의 순간을 잘 겪어낼 수 있었고, 후회없이 나만의 '바른 길'을 찾아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다.

완벽한 멘토를 찾았다고 믿게된 순간, 혼란이 찾아왔다. 고민끝에 선택하여 믿고 달려가던 나의 '바른 길' 자체에 대한 의심과 고민이 생겨났다. 내 선택에 후회가 찾아왔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시간만 죽이이게 된 2006년의 어느 여름날,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을 만났다. 신념과 용기만으로 극복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을, 이 詩를 통해 내가 왜 나의 '바른 길'에서 주저하게 됐는지, 무엇을 잊고 있었기에 흔들리게 되었는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이외수 詩人의 목소리는, 나의 흔들림을 치유해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흔들림의 끝에는 대지에 굳게 박힌 뿌리가 있었음을 알려주었고, 방황을 이겨낼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로 내 선택에 있어 후회라는 말이 떠오를라 치면, 이 詩를 생각하며 나무를 바라본다. 어떤 나무라도 상관은 없다. 수백년을 살아온 거목도, 이제 갓 묘목 티를 벗은 나무라도. 같은 대상을 본다해도, 매 순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텐데, 나무야 아무렴 어떤가. 그저 나무에 달려 바람에 우쭐대는 수 많은 나무 가지도,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되었음을. 그 뿌리가 대지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기에 바람에 흩날리지 않고 그저 흔들거리기만 할 뿐임을 상기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나서 다시 걸어가면 된다. 자신이 그리는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하지만 묵묵히.




* : 이런 말 보면 꼭 삶은 계란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삶은 界亂 맞다. 선택은 한 국면에서,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기 위한 경계에서 필요한 것이고, 그런 경계에 서면 항상 혼란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삶은 달걀은 안되지만, 界亂은 맞다.

** :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아니함도, 그런 행위를 선택한 것이다.

*** : 물론, 두 분은 본인이 나의 멘토임을 모르신다. 아무렴 어떤가. 대신 나는 그 분들께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Posted by ☆ 헤는 밤..
,





정호승 詩人(1950~)은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일상의 쉬운 언어로 현실의 이야기를 詩로 쓰고자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아마도 우리 문단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쉬운 詩를 주장하신 분인 것 같다. 1976년에는 생각을 같이 하는 젊은 동료 詩人들과 '반시(反詩)'라는 동인을 결성해 60년대 선배 詩人들의 난해하고 추상적인 詩들과는 다른 문학적 흐름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일거다. 정호승 詩人의 詩는 따뜻하다. 하고 싶은 말을 편안한 호흡으로, 나직히 읊조리는 느낌이다. 덕분에 詩人의 목소리는 참 듣기 좋다.

'수선화에게'는 1998년 발표된 詩集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 수록된 時로, 이듬해 '나팔꽃'이라는 시노래 모임(김용택, 안도현, 도종환 등과 함께 활동)에서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종종 제목을 혼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또한 그 중 한 사람이고. ^^;

십 수년 째 홀로 객지생활을 하면서 외롭고 지칠 때면 가끔 '수선화에게'를 읽는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홀로 앉아 이 詩를 소리내어 읊어본다. 詩人께선 마치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내는 듯한 말투로 노래하셨지만, 읊으면 읊을수록 이 詩는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나에게 실컷 울지말라고, 외로움을 견디라고, 모든 존재는 외로운게 당연한거라도 스스로 말해주고나면, 詩人께서 하셨을 지도 모를 행동이 떠올라 피식 웃으며 울쩍한 기분을 조금은 풀어내곤 했다.

정말 詩人께선 그러셨을까? 왈칵 쏟아지려는 뜻모를 눈물을 삼키며... '난 울지 않을거야. 외로운게 사람아니겠어? 난 이 외로움을 견뎌내겠어.' 두 주먹 불끈 쥐며 자신을 다독인다. 그리곤 주위에 보이는 모든 존재를 외로움의 동지로 바꿔놓는다. 가슴검은 도요새도, 하느님도, 새들도, 산 그림자도,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 마저도. 사실은 애타게 전화를 기다리며 홀로 물가에 앉아있는데 말이다. 그러다 멋쩍어졌는지, 곁에 피어있던 수선화에게 툭 던진다. 울지말라고.

진실이야 무엇이든. 외로움을 느낄 때 몇 번이고 '수선화에게'를 소리내어 읊어보라. 언제고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어차피 당신도 혼자 있을테니 남 신경 쓸 필요 없다. 자신과 '수선화에게'에만 집중하라.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어떤 목소리로든.. 드라마 '미스코리아'의 정선생 처럼 툭툭 던지듯 자신에게 들려줘도 좋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상냥하게 위로하듯 노래해도 좋다. 몇 차례 스스로에게 '수선화에게'를 들려주고나면, 당신도 나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정말 좋은 詩가 가진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외로움이 조금 달래지는 것은 덤이니 사양말고.
Posted by ☆ 헤는 밤..
,





2014 갑오년(甲午年)의 첫 詩로 靑馬 유치환 詩人(1908~1967)의 ‘행복’을 선정했다. 이유는 눈치채신 것과 같이 詩人의 호(號) 때문이다. 사실 ‘행복’의 배경인 통영서 돌팔이질 하는 친우 최의원 말에 따르면, 60갑자를 이용해 매 해를 부르는 이름은 명리학에서 천명한 것과 같이 입춘(立春)을 기준으로 바뀌기 때문에 금년도 입춘인 2월 4일이 오기 전에는 올해를 靑馬之年이라 부를 수 없다. 하지만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대다보니 자연스레 靑馬 유치환 詩人을 연상하게 되었다. 푸른 말. 호(號)처럼 진취적(?)이고 활발한 사랑을 했던 詩人.


학창시절에는 詩人이 어떤 마음으로 ‘행복’을 노래했는지도 모른채, 그저 詩人이 청록파네 어쩌네 하는 수험용 배경만 머리에 담고서 ‘행복’이 전해주는 노랫말의 아름다움에만 취해 있었다. 마치 짝사랑이라는 열병을 앓던 소년처럼. 사랑받지 못해도 그저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그/그녀에게 보낼 사소한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끄적일 때 갖는 마음. 그 마음을 이해한다 믿었기에 난 그저 ‘행복’을 읽고, 베끼고, 공감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세월을 시간과 함께 흘러온 지금, 조금은 세상살이의 고단함도 맛보고, 연인 사이를 지나는 감정의 흐름도 느낄 수 있게된 지금의 내가 다시 읊어본 ‘행복’은 솔직히 마음 한 켠에 부끄러움을 담게 만든다. 나 또한 그저 길거리에 흔한 사회적 도덕의 노예이기 때문일까?


별스럽게 소개했지만, 이 詩는 詩人이 사랑하는 이에게 보낼 연서를 쓴 뒤, 그것을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들리는 자신의 들 뜬 마음을 묘사한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는 그저 詩를 읽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詩라는 것이 늘 그렇듯 ‘행복’ 또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행복’이라는 詩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는, 詩人이 작품을 쓰던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는게 도움이 되곤 한다. 사실 내게 남의 연애사를 뒤적거리며 사족을 덧붙일 만큼 한가로운 취미는 없지만, 詩的 탐구심으로 잠시 청마의 사랑을 돌이켜볼까 한다. 


詩人은 거리에 흔한 나같은 사회적 도덕의 노예들과 달리, 결혼 후 다른 여자와 연애를 했다. 그렇다. 이혼이 아닌 결혼 '후'다. 그것이 바람이었는지, TV속 연예인을 향한 동경의 눈길과 같은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詩人은 부인이 곁에 있음에도, 부인이 아닌 여성을 향한 사랑을 노래했고, 그 과정이 담긴 詩가 바로 ‘행복’이다. 


詩人은 1947년, 불혹을 한 해 앞둔 나이에 본인이 근무하던 학교로 부임한 29세의 미망인이자 시조시인 이영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처자가 엄연히 살아있는 유부남이, 근무지에 부임한 미망인 선생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연애가 흔하고 넘치는 오늘날에도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소재로 부족함 없는 소재인데, 70여년 전에는 오죽했으랴. 그것도 훗날 교장까지 지낸 교육자의 신분으로. 하지만 시인은 당당히 - 그 자신감의 근원은 모르겠지만 - 시조시인 이영도를 사랑했던 것 같다. 그 증거로, 3여년 간의 구애 끝에 연인으로 발전한 새로운 연인에게  詩人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약 20여 년 동안 5,000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20년. 그리고 5,000통. 

사흘에 두 편은 족히 써야하는 분량이다. 

잠시, 그 열정에 묵념.


5,000여 편의 연서가 모두 행복과 같이 우수한 작품성을 가졌는지, 혹은 그에 필적할만한 장편의 글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詩人께서 작고한 뒤에 그 중 200여 편을 추리고, 오늘 소개한 '행복'의 한 구절을 따 이름지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유고시집이 나온 것을 보면, 적어도 그 중 200여 편은 우수한 작품이었으며 월간 윤종신 처럼, 창작의 고통이 수반될 만한 작품을 적어도 한 달에 한 편 씩은 지으셨다는 단순 무식한 계산이 가능하다. 靑馬 유치환 선생이 아니라, 多作 유치환 선생으로 불러야 하는 것일까.


불륜. 하지만 당당한.


많은 세월이 흐른 뒤의 타인이 보기에도 어울리기 힘든 단어라 생각되지만, 남겨진 흔적만으로 유추하였을 때 사랑의 당사자인 두 사람만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아름답고 풋풋한 고백이 어디 있을까. 이문당에서 연인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정성스레 담은 연서를 고이 접어, 맞은편 통영 우체국에서 부치는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묘사한 시. 불혹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이토록 소년과 같이 순수한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이가 또 있을까. 한 여이을 사랑하는 남자로서 반성이 필요한 대목같다. ^^;


유치환과 이영도. 그 두 분의 마음을 지금와 내가 알 길은 없지만, 열열한 사랑이었음은 '행복'이라는 詩 한 편 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분들 외에도 사의 찬미*라는 노래와 불륜, 동반자살로 유명세를 탔던 윤심덕과 김우진의 경우도 그렇고,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 분들 중에는 간혹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많은 연인을 찾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사랑을 노래하고 표현하던 이들에겐 남들보다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가슴에서 넘치는 사랑을 글로, 예술로 표현해버리고 나면 공허함이 찾아와.. 그 공백을 메워줄 또 다른 사랑을 찾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 요즘 젊은 이들은 불후의 명곡에서 바다가 부른 '사의 찬미'를 들은 것이 첫 경험일 것이다. 난 사실 이전에 이 노래를 들은 적이 있었고, 막연하게나마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바다가 불후의 명곡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공중파에서 불륜을 담은 노래를 버젓이 불러도 되는걸까 하고 말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나는 사회적 도덕의 노예가 맞는 것 같다.


Posted by ☆ 헤는 밤..
,

오랜만의, 그리고 2009년의 첫 포스팅.

많은 詩를 놓고 고민하던 끝에 신경림 님의 詩를 골랐다. 고교 교과서에도 실렸었던(97~99년 사이) 작품으로 무슨무슨 시 xx편 하는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조선일보에 김선우 詩人께서 기고하신 글에 따르면 시인께서 50대가 막 되셨던 시절, 이웃 청춘남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너희 사랑>이란 작품을 선물하신 뒤, 그들의 어려운 생활을 떠올리며 쓰신 詩라고 한다.

식당에서 일하던 여자와, 노동운동으로 쫓기는 삶을 살던 남자가 어렵게 시작한 결혼 생활.. 사랑 하나에 의지해 힘들고 어렵던 1980년대의 끝자락을 헤쳐나가야 했던 신혼부부를 그린 詩에서 2000년대의 끝자락을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너무도 많은 것들이 사라져버렸다. 통행금지를 알리는 소리, 방범대원, 심지어 메밀묵 파는 야식꾼 마저도 이제는 사라져 보기 힘든 것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은 남아있고, 가난한 이웃 역시 우리 곁에 남아있다. 이 글을 쓰는 내가 그 이웃일 수도 있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 이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도 삶을 위해 사랑을 버리고, 현실이라는 거대한 핑계 앞에 사랑을 잊을 수 있는 메마름 속에 살아가고 있을까.

문학 속에 혹은 역사 속에는 낭만적 사랑을 꿈꾸며 사랑을 위해 삶을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랑이란 언어를, 인종을, 종교를 초월할 수 있는 진리가 아닐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나 밤하늘의 별을 헤며 그 별들에 숨어 아름답고 행복한 꿈만 꾸며 살아가고팠던 나는 어느덧 세상을 조금씩 배워가고 세상을 알아야만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 내게 사랑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아득함이 되었다. 조금은 촉촉하던 감성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모두 증발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모습이, 이 시절을 살아가는 이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길 빈다.

'☆ 헤는 밤.. > 作品名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호승] 수선화에게  (0) 2014.02.25
[유치환] 행복  (0) 2014.01.21
[정지용] 호수 1  (0) 2008.12.05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0) 2008.12.04
[고정희] 고백 - 편지 6  (0) 2008.12.03
Posted by ☆ 헤는 밤..
,

정지용 님은 다들 잘 아는 노래 <향수>의 가사가 되는 동명의 詩 '향수'를 지으신 분이다. 일제 강점기에 아름다운 싯귀를 많이 남기셨었던 분으로, 이 정지용 님의 대표작까지는 못되지만 이 '호수 1'은 그분의 다른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은 편안한 어투로 담담히 읇조리는 듯한 느낌의 詩로 요즘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어있다고 한다.

최근 짧은 詩를 연이어 소개하게 되는데, '호수 1' 역시 짧게 할 말만 하였지만 여운은 긴, 그런 詩다. 그리고 무뚝뚝한 이가 쑥스러운 듯, 툭 내뱉듯 '당신이 보고은 것 같소' 라고 하는 것만 같다. 요즘의 詩에는 사랑하면 사랑한다, 좋으면 좋다, 보고싶으면 보고싶다고 솔직하게 말하지만, 근대 우리 詩에는 이런 돌려 말하기(?)가 많아서 좋다. 은근한 마음의 표현이랄까..

고백하기에 부끄러운 마음, 얼굴을 가리면 숨길 수 있겠지만, 보고싶은 마음은 너무도 커 말로 다 할 수 없어 눈을 감고 너를 떠올려본다.. 는 느낌. 혹은 보고 싶어도 보고싶다 하지 못해 눈 감고 너를 그려보는 모습.. 어쩌면 일제 치하에 독립한 이 땅이 보고싶어 그 마음, 그 울분을 이기지 못해 얼굴을 가리고 눈을 감고.. 그랬던 것은 아닌지..

하지만, 시가 발표되고 70년이 훌쩍 흐른 지금의 나는 이 시에서 다만 사랑할 뿐인 한 사람이 눈 감고 사랑하는 이를 마음 속으로 조용히 불러보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이 역시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겪은 경험과 詩를 읽는 동안의 내 마음가짐 때문이리라.

잠시, 두 눈 지긋이 가만히...... 보고 픈 이를 떠올려 본다.
Posted by ☆ 헤는 밤..
,

앞서의 고정희 님의 '고백 - 편지 6' 과 같이 짧지만 강렬한 詩다. 그리고 깊다. 원래도 유명했거니와 허영만 畵伯의 만화 <식객>과 이를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영화(2007)와 드라마(2008)에서도 인용되어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詩다. 해석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길어서 외기 힘든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강렬하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詩가 사랑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많은 이들의 마지막 행의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물음에 침묵한다. 뭉클하기도 하고 뜨끔하기도 할 것이다. 처음엔 나 역시 그랬다. 마지막 행의 뜨끔한 질문에 자신만을 생각했고, 그런 내가 연탄재 만 못한가.. 하는 자괴감 어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수 밖에 없는 詩라고 생각했다.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묻고 싶은 것은 마지막 행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뜨겁게 해 주었던 존재'의 함축이라고 생각했던 연탄재를 의인화의 대상으로 본다면, 연탄재는 나를 '뜨겁게 해 주었던, 그래서 내가 사랑했던 이(연탄이 아니라 연탄'재'니까..과거형이 옳겠지.)'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발로 찬다는 것은? 나를 뜨겁게 해 주었던(내가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해 준) 이를 발로 차지 말라고 했다. 사랑은 식어버릴 수 있지만, 그 마지막은 아름답게 보내주라는 의미가 아닐까.

멋대로의 해석이지만, 사랑에 대한 열정이 부족함을 지적함과 동시에 사랑이 식었더라도 그 사랑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고 생각하니 詩가 다르게 느껴졌다. 문학에서 어떤 정서를 짚어 내는 것은 결국 讀者의 경험과 생각에 달린 문제다. 그렇다면 나의 감상이 바뀐 것은 처음 이 詩를 접하기 이전에는 몰랐던, 사랑과, 그리고 이별을 겪어보았기에 그 때는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 것일까.
Posted by ☆ 헤는 밤..
,

詩가 여느 문학에 비해 어려운 점이자 동시에 우월한 점이 있다면 바로 파괴력이 아닐까. 문학이라는 것이 결국 作者의 생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언어 예술이라는 점에서, 詩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강렬하게 作家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문학 장르(genre)다. 고정희 시인의 '고백'은 그런 면에서 詩의 절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作品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이 詩는 상당히 파격적이다. 詩의 3대 요소(기억이 좀 가물가물 하지만;)인 윤율(음악적 요소), 심상(회화적 요소), 정서(의미적 요소)의 표현이 모호하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반복이나 대구를 통한 리듬감 형성을 통해 표현되는 운율도 전혀 보이지 않고(굳이 찾자면 '감/전/되/었/다/' 부분 정도? ), 五感을 바탕으로 한 심상의 묘사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굳이 찾자면 감전되는 것이 촉각? ). 그렇다고 사용된 낱말들이 고도의 의미를 함축해서 짙은 정서를 나타내지도 않는다(굳이 찾자면 전깃줄을 통한 연상 작용으로 사랑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 정도? ). 그런데 왜 나는 이 詩를 처음 접하고 나 역시 감전되는 듯한 강렬한 느낌이 들었을까.
(이런 해석이 억지일 수도 있고, 당연히 틀릴 수도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굳이 제대로 된 해석이 필요하다면 괄호 부분에 쓴 것 정도? ^^; )

답은 매우 간단하다. 바로 사랑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첫 눈에 반한다는 느낌 혹은 그에 준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詩人께서는 아마도 그것을 노린 것이 아닐까. 詩의 3대 요소니 뭐니 해도 결국 그것은 문학을 바라보기 위한 다소 보편적인, 그리고 보다 교육적인 목적과 어쩌면 비평가들의 수준 높아 보이는 언어 체계를 위한 분류에 불과할 뿐(詩와 다른 문학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일 가능성이 제일 높겠지만..) 作家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다. 그리고 讀者는 그런 분류를 몰라도,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다면 詩人께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마치 감전된 느낌처럼 한 번 부르르 떨어줄 수도 있을 것이고..

詩는 다른 문학과 달리 '낭송(朗誦)'하는 경우가 많다. 읊는다고도 한다. 소설을 옆사람과 공유하기 위해서 읽어주진 않는다. 다만 책을 권할 뿐. 하지만 시는 詩人의 느낌을 讀者의 감성으로 해석해 옆 사람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 다른 詩는 보통 읽고 여운을 느끼는 편이지만, 고정희 님의 이 '고백 - 편지 6'은 어떻게 읊을까, 혹은 어떤 이에게 어떻게 낭송해줄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해 준다. 매우 짧지만, 여러모로 즐거운 詩다.

[참고]
저는 제대로 된 詩作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고 단지 고교 시절까지의 국어 및 문학 수업에서 몇 유명한 詩人의 作品을 '정해진' 해석에 따라 읽어본 것이 전부인, 즉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과 별 다를 것이 없는 수준(물론, 이 글을 보는 분의 수준이 더 높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의 평범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래서 나는 詩를 마음껏 느끼고 멋대로 해석하지요. 고정희 님의 '고백 - 편지 6' 역시 그런 저의 저질스러운 감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절대 본인의 해석을 믿지 않기를 바랍니다.

'☆ 헤는 밤.. > 作品名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지용] 호수 1  (0) 2008.12.05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0) 2008.12.04
[황동규] 즐거운 편지  (0) 2008.12.02
[윤동주] 서시 (序詩)  (0) 2008.12.01
[윤동주] 별 헤는 밤..  (0) 2008.11.30
Posted by ☆ 헤는 밤..
,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친 詩選 세 번째 시간이 돌아왔다. 사실 별거 없는데 저렇게 쓰고 보니 무언가 거창한 작업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지금 하는 일은 단지 내가 좋아하는 글을 소개하고 간단한 감상을 쓸 뿐인데 말이다. 말(혹은 글)이란 참 묘한 것이다. 말/글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나 역시 그 묘한 힘에 이끌려 詩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황동규 님의 '즐거운 편지'를 처음 접한 것은 고교 1학년 시절, 국어 시간에 보충교재를 풀다가 97년도 수학능력평가 기출이라는 주석이 달린 문제를 통해서였다. 아무리 봐도 매우 짧은 '산문'인데, 문제에서는 아래의 '시'를 읽고 물음에 답하라고 써 있었다. 묘했다. 시라는 것은 짧은 문구 혹은 낱말을 이어 붙여 의미를 함축시켜 멋진 말을 전하는 문학이 아니었던가. 산문이 시라니... 정말 묘할 따름이었다. (박신양, 최진실 주연의 영화 '편지'에서도 등장하지만 이미 줄줄 외고 다닐 때였고, 오히려 '즐거운 편지'가 등장한 영화라는 이유로 영화 개봉 이후 출판된 동명의 소설 <편지>를 구입했었다.)

'즐거운 편지'를 알기 이전에 내게 詩라는 것은 짧지만 강렬하다는 점에서 멋지다는 느낌이 있었을 뿐이다. 근대 문학 전집에 시집도 있었지만 단순히 전집 중 한 권에 불과했다. 하지만 '즐거운 편지'를 알고 난 뒤에 詩는 '내가 좋아하는 문학 장르(genre)'가 되었고 '나도 써보고 싶은' 글이 되었다. 초등학교(재학 당시엔 국민학교 였음) 재학 시절,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 주기 위한 목적으로 상도 주고 시를 짓게 해서 벽에 걸어 주기도 하고 그런 일 때문에, 어른들이, 남이 시켜서 동시를 2편 썼던 적이 있다. 물론, 긴 글을 쓰기 싫어서 짧은 동시를 선택했을 뿐이지만, 어쨌든 벽에 걸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누가 '시켜서' 한 일이다. '즐거운 편지'는 내게 詩를 쓰고 싶은 '자발적인' 마음을 심어줬다.

이후에 문학 전집에 있던 詩篇은 탐독의 대상이 되었다. 읽고. 찾고, 보고, 베끼고.. 이런 주제엔 어떤 詩가 어울릴까 고민해보고 내가 쓴다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좋은 詩는 수첩(평소엔 가지고 다니지도 않던 것을, 심지어 먼지 쌓인 다이어리를 꺼내기 손수 속지까지 꾸며가면서!!)에 베껴서 읽고 다녔고(이상하게 아무리 봐도 외지는 못했다;;), 멋진 구절이 생각나면 메모 했다가 내 詩를 쓰기 위한 소재로 남겨 두었다.

사진을 알고 나서는 한 가지가 더 늘었지만, '즐거운 편지'는 '내 평생에 꼭 해보고 싶은 일' 목록에 '내 이름으로 출간된 시집을 한 권 만들기'를 추가하게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꿈많은) '문학 소년'이라고 부르게 했고, 직접 詩(같지는 않지만 어쨌든)를 쓰게 했고, 학교 친구들과 했던 수능을 위한 언어영역 스터디에서 친구들의 요청으로 詩 부분을 담당해서 청산별곡 특집을 준비(그 해 정말 출시되었고 한 문제는 예측까지 했다!!)하고 시조 수첩을 만들게 했고, 대학 과방의 날적이에 '00' 별 헤는 밤..' 이라고 필명을 쓰게 했고, 마침내 on-line 상에서의 별칭마저 다소 엽기적인(2000년 대입 당시 나의 코드이자, 젋은이들 사이의 유행 키워드) 것들에서 '☆ 헤는 밤..' 으로 바꾸게 만들었다.

지금은 내가 詩를 썼었고, 가끔 쓰기도 한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놀라곤 한다(사실 종종 읽고, 詩에 대한 포스트를 만든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란다). 물론 그 수준은 매우 저질이라 종내에는 '그럼 그렇지..'라는 반응을 보이게 하지만, 어쨌든 '물질에 미쳐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공학도'가 문학을, 그것도 詩를 자주 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워 하는 눈치다. 그리고 그런 나를 만든건 팔 할이 '즐거운 편지' 였다. 이것이 내가 황동규 님의 '즐거운 편지'를 최고의 詩로 꼽고, 남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詩로 꼽는 이유다. 비록, 여기서는 내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언급해야 했기에 세 번째로 밀렸지만 말이다.

'☆ 헤는 밤.. > 作品名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지용] 호수 1  (0) 2008.12.05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0) 2008.12.04
[고정희] 고백 - 편지 6  (0) 2008.12.03
[윤동주] 서시 (序詩)  (0) 2008.12.01
[윤동주] 별 헤는 밤..  (0) 2008.11.30
Posted by ☆ 헤는 밤..
,


두 번 째 선택은 역시 윤동주 님의 序詩다. '별 헤는 밤'의 소개에서도 언급한 것 처럼 황동규 님의 '즐거운 편지'가 내게 문학의 아름다움을 선사함으로써 詩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촉구했다면, 윤동주 님의 '序詩'는 문학과는 무관하게 내 생활 태도를 꾸짖어 주어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뉘우치게 해 준 시다.

詩人께서는 신앙생활에 바탕을 둔 자아의 성찰과 고민, 번뇌 그리고 일제 치하에서의 고국을 점령한 일본에서의 유학생활 중 겪으신 경험에서 우러나는 자기 반성적인 태도를 담아 자신의 詩集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대표하는 글로 序詩를 지으셨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반영된 이 글에서 은은히 베어나는 종교적인 색채는 기독신앙인들의 바른 삶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나에게 걸림돌이었지만, 그 진지한 자세와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다짐만을 담담히 말하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기독신앙을 갖고 계신 분들이 지으신 많고 훌륭한 詩 중에서 유독 윤동주 님의 詩가 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유교나 소승불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자기수양 및 자아성찰적 태도 때문이다. 타인에게 강요하는 善이 아니라 한 구절, 한 마디가 모두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진지한 자세이기에,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짙은 호소력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닐까...

'☆ 헤는 밤.. > 作品名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지용] 호수 1  (0) 2008.12.05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0) 2008.12.04
[고정희] 고백 - 편지 6  (0) 2008.12.03
[황동규] 즐거운 편지  (0) 2008.12.02
[윤동주] 별 헤는 밤..  (0) 2008.11.30
Posted by ☆ 헤는 밤..
,



참 많은 고민 끝에 作品名品에 소개할 첫 詩를 선택했다. 이 공간은 시를 설명하기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한 편을 보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해두는 곳이다. 많은 고민 끝에 내가 첫손에 꼽는 두 편의 시를 떠올렸다. 하나는 황동규 님의 '즐거운 편지'요, 다른 하나는 윤동주 님의 '序詩'다. '즐거운 편지'는 내게 詩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글이고, '序詩'는 내게 뉘우침(종교적인 것은 아님)을 준 시다. 하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詩는 윤동주 님의 '별 헤는 밤' 이다. 내 블로그니까 내가 가장 절실하게 느낀 詩를 소개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 블로그의 이름이자 내가 인터넷 공간에서 내 얼굴을 대신해 즐겨 사용하는 이름의 유래를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별 헤는 밤'을 선택했다.

내 무디고 단순한 느낌에, 이 詩는 파격을 보이면서도 격식을 지키고 있고. 외로움을 읍조리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자신을 바로잡는 다짐을 상기하는, 詩人께서 유학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많은 감정을 담담하게 담고 있다. 나 또한 나름의 유학 생활(고향집을 떠나 타향에서 수학 중이니까;;)을 하면서 이 詩를 접하고 무언가 통하는(?) 느낌에 즐겨 읽고, 즐겨 쓰고, 즐겨 말하고 있다. 난생 처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홀로 대해야 했던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쓸쓸함. 고향 땅의 소주 한 잔으로 털어버릴 수 없었던 상처들. 이제는 아무렇지 않지만 처음에는 왜 그리 어렵게만 느껴졌는지.. 이 詩를 처음 읽었던 것은 고교시절이었지만, 詩人의 마음을 느낀 것은 객지생활에서 처음 지친다는 느낌을 받았던 날 밤, 달을 벗삼아 홀로 소주잔을 기울일 때였다.

이제는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또 다른 생활에서 잠시 떠올릴 수 있었기에 내가 논산 훈련소에서 패러디 했던 글을 덧붙이면서 이 포스트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별 헤는 밤..
 
- 윤동주 / 한승민 改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 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불침번이 돌아오는 까닭이요,
경계근무를 서야하는 까닭이요,
22시면 소등하여 취침해야 했던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배식과
별 세개에 야쓰와
별 다섯에 막힌 똥변기 2사로와
별 여섯에 환복과
별 일곱에 집합 30분 전과
별사탕 하나에 건빵 2개,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생활관 침상을 같이 했던 전우들의 이름과, 천사지현, 눈빛만기, 순수원혁, 미소경훈 이런 분대장님들의 이름과, 정직·근면·성실하신 우리 소대장님 성함과, 경계, 행군, 유격, 수류탄, 숙영지, 사격 이런 증식과 후식이 불출되던 훈련들의 이름과, 제식, 각개, 화생방, 총검술 그리고 피나고 알배기고 이갈리던 사격술 예비훈련 같은 부식도 없던 훈련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이제 추억 저편에 남았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민간인의 세상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땀에 젖은 전투복을 관물접어 올리어 손날로 문지르며 각을 잡아 봅니다.
 
딴은 퇴소하는 그날까지도
눈빛만기의 호통이 두려운 까닭입니다.
 
그러나 4주가 지나고 나의 청춘에도 소집해제가 찾아오면
연병장에 파아란 잡초가 피어나듯이
내 주기표 묻힌 야쓰장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7중대 훈련병의 밤 감상문 발표 中, 2008.9.9>

'☆ 헤는 밤.. > 作品名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지용] 호수 1  (0) 2008.12.05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0) 2008.12.04
[고정희] 고백 - 편지 6  (0) 2008.12.03
[황동규] 즐거운 편지  (0) 2008.12.02
[윤동주] 서시 (序詩)  (0) 2008.12.01
Posted by ☆ 헤는 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