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反省)



끔찍한 밤, 416을 잇겠노라 다짐하며
소심히 망각(忘却)을 역설했다.

구차한 밤에 남겨둔 울분은
아이들의 시신(屍身)처럼 식어갔고,
끝내 아이들의 시선(視線)을 놓치고 말았다.

밤과 낮이 천 번은 바뀌었다.

아이였던 나는 아비가 되었고,
내 아이의 시선(視線)에서
잊었던 한 언론의 양심을 들었다.

뒷 일을 부탁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차한 밤의 기억
뒤늦은 노란 약속
내일로 이을 세월

침몰하지 않을 진실이 바로 설 때까지
잊지않고, 잇겠다.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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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헤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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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忘却)



지친다,
아니 지쳤다.

삶, 어느 귀퉁이
돌고 돌아도 늘 내 자리,
구석에 흘려버린 꿈엔
위안이 없다..

꿈 버린 삶
포기도 못한 채
불평, 불만, 불신,
그중에 제일인 불안으로.
영생의 집을 짓는다..

세월이 거꾸로 가고,
세파람에 흩날리는
성수가, 낙루해도..

그네를 기억해야기에
구차한 밤, 하루를 잇는다.


201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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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헤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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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1946~) 詩人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은 2003년 발표된 詩集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에 수록된 詩다. 사실 詩人의 作品을 소개하기 까지 많이 망설였다. 평소 詩人의 글을 즐겨 읽은 것도 아니고, 남들과 같이 언론이나 sns를 통해 詩人의 사회적 활동을 그저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인 것이 고작이었기에, 詩人의 文學觀이나 작품에 내재된 哲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詩人의 作品도 이 詩를 접한 것이 전부였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앞서 여러 詩人들의 詩를 소개할 때도 그분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기에, 뻔뻔한 얼굴을 곧게 들고서 그저 '가끔씩 그대 흔드릴 때는'에 대한 내 감상만을 적어볼까 한다.

삶이란 무수한 선택의 집합*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맞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느 하나의 길을 골라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아가는 행위인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갇혀 존재하는 우리에게 한 번 택하여 지나온 길을 되돌아갈 방법은 없기에, 언제나 선택의 순간에서는 망설이게 된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단 하나를 선택함에 따르는 기회비용을 계산하게 되고, 선택에 따른 수 많은 관계의 변화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의 갈등을 만들어 낸다. 이외수 詩人은 가끔 흔들릴 것이라 말했지만, 사실 우리는 항시 흔들거리며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다.

萬人萬思라고, 비슷한 선택의 순간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각각의 선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는 모두가 같다.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한다. 그래서 난 2006년 여름에 겪었던 어떤 선택의 순간에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는 詩人의 말을 떠올렸다. 詩人과 같은 나무를 보았다 하더라도, 詩人과 같은 생각을 하진 않겠지만, 시인도 나도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해야했기에 같은 방법을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난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서부터 서서히 독립된 생활을 시작했기에, 많은 부분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했다. 나를 믿고 홀로서기를 도와주시는 부모님께 언제까지나 의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선택의 무게를 이기기 위해 윤동주 詩人과 이영도 作家를 멘토***로 맞이했다. 내가 추구하는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윤동주 詩人의 '序詩'에서 얻었고, 선택의 과정에서 생기는 혼란은 이영도 作家가 '드래곤 라자'에서 핸드레이크의 입을 빌어 했던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 빛을 준다"는 말을 길라잡이로 삼아 극복했다. 이 두 분의 목소리 덕분에 수 많은 선택의 순간을 잘 겪어낼 수 있었고, 후회없이 나만의 '바른 길'을 찾아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다.

완벽한 멘토를 찾았다고 믿게된 순간, 혼란이 찾아왔다. 고민끝에 선택하여 믿고 달려가던 나의 '바른 길' 자체에 대한 의심과 고민이 생겨났다. 내 선택에 후회가 찾아왔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시간만 죽이이게 된 2006년의 어느 여름날,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을 만났다. 신념과 용기만으로 극복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을, 이 詩를 통해 내가 왜 나의 '바른 길'에서 주저하게 됐는지, 무엇을 잊고 있었기에 흔들리게 되었는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이외수 詩人의 목소리는, 나의 흔들림을 치유해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흔들림의 끝에는 대지에 굳게 박힌 뿌리가 있었음을 알려주었고, 방황을 이겨낼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로 내 선택에 있어 후회라는 말이 떠오를라 치면, 이 詩를 생각하며 나무를 바라본다. 어떤 나무라도 상관은 없다. 수백년을 살아온 거목도, 이제 갓 묘목 티를 벗은 나무라도. 같은 대상을 본다해도, 매 순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텐데, 나무야 아무렴 어떤가. 그저 나무에 달려 바람에 우쭐대는 수 많은 나무 가지도,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되었음을. 그 뿌리가 대지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기에 바람에 흩날리지 않고 그저 흔들거리기만 할 뿐임을 상기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나서 다시 걸어가면 된다. 자신이 그리는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하지만 묵묵히.




* : 이런 말 보면 꼭 삶은 계란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삶은 界亂 맞다. 선택은 한 국면에서,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기 위한 경계에서 필요한 것이고, 그런 경계에 서면 항상 혼란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삶은 달걀은 안되지만, 界亂은 맞다.

** :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아니함도, 그런 행위를 선택한 것이다.

*** : 물론, 두 분은 본인이 나의 멘토임을 모르신다. 아무렴 어떤가. 대신 나는 그 분들께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Posted by ☆ 헤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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