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즐거운 편지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친 詩選 세 번째 시간이 돌아왔다. 사실 별거 없는데 저렇게 쓰고 보니 무언가 거창한 작업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지금 하는 일은 단지 내가 좋아하는 글을 소개하고 간단한 감상을 쓸 뿐인데 말이다. 말(혹은 글)이란 참 묘한 것이다. 말/글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나 역시 그 묘한 힘에 이끌려 詩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황동규 님의 '즐거운 편지'를 처음 접한 것은 고교 1학년 시절, 국어 시간에 보충교재를 풀다가 97년도 수학능력평가 기출이라는 주석이 달린 문제를 통해서였다. 아무리 봐도 매우 짧은 '산문'인데, 문제에서는 아래의 '시'를 읽고 물음에 답하라고 써 있었다. 묘했다. 시라는 것은 짧은 문구 혹은 낱말을 이어 붙여 의미를 함축시켜 멋진 말을 전하는 문학이 아니었던가. 산문이 시라니... 정말 묘할 따름이었다. (박신양, 최진실 주연의 영화 '편지'에서도 등장하지만 이미 줄줄 외고 다닐 때였고, 오히려 '즐거운 편지'가 등장한 영화라는 이유로 영화 개봉 이후 출판된 동명의 소설 <편지>를 구입했었다.)
'즐거운 편지'를 알기 이전에 내게 詩라는 것은 짧지만 강렬하다는 점에서 멋지다는 느낌이 있었을 뿐이다. 근대 문학 전집에 시집도 있었지만 단순히 전집 중 한 권에 불과했다. 하지만 '즐거운 편지'를 알고 난 뒤에 詩는 '내가 좋아하는 문학 장르(genre)'가 되었고 '나도 써보고 싶은' 글이 되었다. 초등학교(재학 당시엔 국민학교 였음) 재학 시절,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 주기 위한 목적으로 상도 주고 시를 짓게 해서 벽에 걸어 주기도 하고 그런 일 때문에, 어른들이, 남이 시켜서 동시를 2편 썼던 적이 있다. 물론, 긴 글을 쓰기 싫어서 짧은 동시를 선택했을 뿐이지만, 어쨌든 벽에 걸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누가 '시켜서' 한 일이다. '즐거운 편지'는 내게 詩를 쓰고 싶은 '자발적인' 마음을 심어줬다.
이후에 문학 전집에 있던 詩篇은 탐독의 대상이 되었다. 읽고. 찾고, 보고, 베끼고.. 이런 주제엔 어떤 詩가 어울릴까 고민해보고 내가 쓴다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좋은 詩는 수첩(평소엔 가지고 다니지도 않던 것을, 심지어 먼지 쌓인 다이어리를 꺼내기 손수 속지까지 꾸며가면서!!)에 베껴서 읽고 다녔고(이상하게 아무리 봐도 외지는 못했다;;), 멋진 구절이 생각나면 메모 했다가 내 詩를 쓰기 위한 소재로 남겨 두었다.
사진을 알고 나서는 한 가지가 더 늘었지만, '즐거운 편지'는 '내 평생에 꼭 해보고 싶은 일' 목록에 '내 이름으로 출간된 시집을 한 권 만들기'를 추가하게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꿈많은) '문학 소년'이라고 부르게 했고, 직접 詩(같지는 않지만 어쨌든)를 쓰게 했고, 학교 친구들과 했던 수능을 위한 언어영역 스터디에서 친구들의 요청으로 詩 부분을 담당해서 청산별곡 특집을 준비(그 해 정말 출시되었고 한 문제는 예측까지 했다!!)하고 시조 수첩을 만들게 했고, 대학 과방의 날적이에 '00' 별 헤는 밤..' 이라고 필명을 쓰게 했고, 마침내 on-line 상에서의 별칭마저 다소 엽기적인(2000년 대입 당시 나의 코드이자, 젋은이들 사이의 유행 키워드) 것들에서 '☆ 헤는 밤..' 으로 바꾸게 만들었다.
지금은 내가 詩를 썼었고, 가끔 쓰기도 한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놀라곤 한다(사실 종종 읽고, 詩에 대한 포스트를 만든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란다). 물론 그 수준은 매우 저질이라 종내에는 '그럼 그렇지..'라는 반응을 보이게 하지만, 어쨌든 '물질에 미쳐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공학도'가 문학을, 그것도 詩를 자주 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워 하는 눈치다. 그리고 그런 나를 만든건 팔 할이 '즐거운 편지' 였다. 이것이 내가 황동규 님의 '즐거운 편지'를 최고의 詩로 꼽고, 남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詩로 꼽는 이유다. 비록, 여기서는 내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언급해야 했기에 세 번째로 밀렸지만 말이다.